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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40, 인생 3막을 기록하기로 했다.

내 꿈은 상업영화 감독이다. 아니, 이었다(?)

2024년 2월 1일

 

 새해가 시작된지 벌써 한달이 지났다. 1월은 그야말로 격정의 시간이었다. 연출부로 일하기로 한 상업영화가 속된말로 엎어졌다. 투자가 문제였다. 나는 그동안 슈퍼바이저로써 특정 씬에 대한 코디네이터 역할로 상업영화 두 편에 참여했고, 그 외 독립영화에서 글을 쓰고, 연출했다. 고로 연출부 경험이 전무한 나에게 제안이 왔을 때 큰 기대감을 갖고 수락했다. 상업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장면에 관여하는 연출부 경력은 또 다른 영화의 연출부로 일 할 수 있는 경력직이 되어 계속해서 영화 일을 할 수 있기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기대와는 달리 영화 제작이 무산된 것이다. 그러면서 2024년의 첫 시작부터 올해 내 계획이 망가져버렸다. 

 

 

 사실 올해 내 나이는 정확하게 말하면 39살 이다.
상큼한 청년기를 지내고, 단단한 중년을 준비하는 나이가 39살이 아닐까 싶다.

 

 영화판에서 동년배 친구들은 1st 조감독으로서 현장 경험이 많거나, 좋은 시나리오로 이미 상업 데뷔를 했거나, 독립영화계에서 입소문을 타고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영화가 엎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연출부 일 자리를 소개해달라고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상업 영화 연출부를 하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만났다. 그렇게 그들과의 만남에서 그동안 내가 간과하고 있던 것을 알게됐다. 사실 간과했다기보단 도망가고 싶었던 것 같다. 결국 입봉을 위해서는 내 글, 내 시나리오가 있어야 한다. 이게 본질이고, 이것 없이는 결국 내가 원하는 상업 영화 감독은 될 수 없다. 물론, 경력이 많아서 좋은 기회가 생겨서 다른 작가의 시나리오로 입봉을 할 수도 있지만, 요즘 우리나라 영화판에서 그런 기회는 점점 없어지고 있고, 여간해서 그런 기회는 오지 않는게 실상이다.

 

영화, 계속 해도 될까? 
다행히 아직 미혼이다. 부모님에게는 다행히가 아니지만.
다행히 비혼주의자는 아니다. 그녀에게는 다행히가 아닐 수도 있다.

 

 '글은 쓰기 싫고, 돈은 있어야 겠는데 이왕이면 영화 일하면 좋겠다.' 는 생각으로 그 동안 하지 않았던 연출부를 해야겠다는 비겁한 내 마음을 들켜버렸다. 글은 안써지고, 통장 잔고는 제로 0 에 가까워지는 걸 보니 조바심이 나서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안 될놈은 안된다. 아무래도 나는 도망가도 되는 인생은 아닌 듯 하다. 이렇게 내 마음을 직시하게 되니 흐리멍텅했던 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내 주변을 둘러보았다. 불철주야 아들 걱정하는 부모님이 보였고, 지치고 지쳐 내버려두는 아픈 손가락이 되어있는 내 자신이 보였다. 그리곤 이런 나도 좋아해주는 그녀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그동안 나는 왜 그렇게 이기적이었는지, 왜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건지, 그래서 뭐가 됐는지, 그럼에도 뭘 얻었는지 등등의 질문들이 연쇄적으로 떠오르고 터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잘 되면 호강시켜드릴게, 잘 되면 좋은 것 해줄게 라는 좋은 핑계로 소중한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만 했다. 아직 잘 된적이 없으니까, 그렇게 사랑을 받기만 했다.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을 넘어 부끄럽기까지 했다. 꿈을 꾸는 것이 부끄럽다는 말이 아니라 꿈만 꿨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꿈을 쫓아 꿈을 이루겠다고 호기롭게 떵떵거렸지만, 결국 말뿐이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물론, 지금까지 영화 감독을 꿈꾸면서 단 한번도 대충한 적 없었고, 최선을 다해서 작업하지 않은 적은 없다. 하지만, 이건 그저 내 입장이었을 뿐, 그들에게는 아쉬움 투성이을 것이다. 그럼에도 묵묵히 기다려준 그분에게 이제 더 이상 원하지 않는 의무를 강요하고 싶지 않다.

 

영화만 고집하는 나를 포기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 단 한곳도 어색한 지점이 없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잘 흘러왔다. 이런 자연스러움은 '나만 생각하지 않는 마음' 때문 아니었을까싶다. 하지만 이런 마음의 대부분은 정작 생각해야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쉽고, 안타깝기 그지 없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나를 사랑해주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챙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기로 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를 위해서.


여기까지가 내 인생 2막까지 요약이다. 소개하지 않은 1막과 2막의 인생은 앞으로 글을 쓰면서 경험 혹은 경력으로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을것 같다.

 

거창하거나 대단하지 않지만 영화를 포기하는데 있어서 나에게는 큰 사건이기에 그 후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것이 쉽지않고, 새로 시작한다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지금이다. 나이 때문만은 아니지만, 나이 때문이 아니라고도 말 할수 없다.

 

욕망의 저울을 덜어내고 현실의 쟁반에 무게를 더 얹었다.
비로소 포기할 수 있는 용기를 냈다.